토고, 미셸 뒤카로이
에디터 김선진 포토그래퍼 박성훈
1973년 공개된 이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토고는 꾸준히 생산되며,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디자인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해왔다. 디자이너 미셸 뒤카루아의 상상력과 신소재가 열어준 형태적 가능성, 그리고 1960~1970년대 사회·문화적 변화 속에서 형성된 새로운 생활 방식을 담은 결과다. 당대의 감각과 태도를 반영한 결과물이자, 반복되는 유행의 순환 속에서도 지속성을 증명해온 사례로서 토고는 상징적이고, 전설적이며, 유일무이한 아이콘으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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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뒤카루아의 상상력
여러 겹의 주름으로 이루어진 토고의 표면은 종종 ‘찡그린 신생아의 얼굴’이나 ‘샤페이 강아지의 주름’에 비유된다. 이러한 주름 형태의 유래로는 미셸 뒤카루아가 어느 날 싱크대 위에 놓인 접힌 치약 튜브에서 영감을 받아 이를 곧바로 스케치로 옮겼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토고라는 이국적인 이름 역시 여러 일화를 낳았다. 고대 로마의 주름 잡힌 전통 의상의 명칭 ‘토가 toga’에서 따왔다는 설 혹은 미셸 뒤카루아가 지구본을 돌린 뒤 한 지점을 짚어 토고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가 이전에 선보인 디자인에서도 모로코의 도시 사피 Safi,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항구도시 마르살라 Marsala 등 지명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추측은 설득력을 얻었다. 다만 실제로 미셸 뒤카루아가 치약 튜브나 지구본을 활용해 토고를 구상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토고는 마치 스팀 파이프처럼 양쪽 끝이 막힌 채 스스로 접혀 있는 치약 튜브 같은 모습”이라고 설명했을 뿐이다. 이름 또한 당시 토고의 홍보를 담당하던 마케팅 디렉터의 아이디어였다는 의견이 전해진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일화들이 큰 이견 없이 받아들여질 만큼, 토고의 형태가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토고가 출시된 1973년, 대중의 반응은 지금과 달랐다. 토고는 파리에서 열린 생활 예술 박람회(Salon des Arts Ménagers)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이 박람회에는 당시 활동하던 프랑스 디자이너 피에르 샤포 Pierre Chapo와 마르셀 가스쿠앵 Marcel Gascoin의 목재 가구도 함께 전시되고 있었다. 이에 비해 파격적 형태의 토고를 본 일부 관람객은 “받침대를 만드는 것을 잊은 게 아니냐” “소 파 제작을 마무리하지 못한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고, 소매업자들의 평가 역시 냉담했다. 하지만 몇몇 업계 관계자는 토고를 주의 깊게 살폈다. 그중에는 르네 가브리엘 상(Prix René Gabriel)의 심사위원도 포함돼 있었다. 이 상은 혁신적이고 민주적인 가구에 수여하며, 합리적 가격에 높은 품질의 디자인을 제안하는지를 평가한다. 미셸 뒤카루아는 토고가 이 기준에 부합하는 사례로 인정받으면서 1973년 이 상을 받았고, 이후 토고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며 성공을 거둔다.
토고가 출시된 1973년은 리네로제가 가족 사업의 형태를 넘어 공식 브랜드로 론칭한 해이기도 하다. 이 시기 브랜드명을 확정하고 첫 리네로제 매장이 문을 열었다. 여기에 더해 브랜드를 대표하는 토고 소파의 등장은 리네로제 브랜드가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한 시발점이 되었다. 이처럼 미셀 뒤카루아의 상상력이 브랜드의 새로운 챕터를 열며, 그는 리네로제 디자인 부서의 수장 자리를 맡게 되었다. 1973년부터 현재까지, 토고는 프랑스 쥐라 산맥 자락, 작은 마을 브리오르 Briord에 위치한 공장에서 지금도 꾸준히 생산되고 있다. 이들의 상징적인 주름 역시 장인들이 여전히 수작업으로 제작한다.
폼, 다재다능한 신소재의 등장
미셸 뒤카루아는 토고 이전부터 리네로제와 함께 여러 소파 디자인을 선보여왔다. 바닥에 직접 닿는 매우 낮은 좌면이 특징인데, 리네로제 역사상 최초로 전체를 폼으로 제작한 가구인 아드리아 Adria 컬렉션을 시작으로 내부를 폼으로 채우고 버튼으로 좌석을 고정하는 방식의 소파들이 이어졌다. 이들 디자인은 구조적으로 토고의 전신이라 볼 수 있을 만큼 유사한 특징을 공유하고 있었다.
미셸 뒤카루아가 이러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시기에 등장한 폼, 열성형 플라스틱, 솜과 같은 신소재와 기술적 진보가 있었다. 1950년대 폴리우레탄 폼이 개발된 이후, 1970년대에 이르러 소파 전체를 폼으로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이 본격적으로 뒷받침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폴리우레탄 폼은 수분 흡수와 변형에 강하고 장력 분포가 균일해 장기간 안정적 착석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에 기반해 1971년 한스 후퍼가 로셰 보보아를 위해 디자인한 마종 소파를 비롯해 피에르 폴랑, 이탈리아의 여러 급진적 디자이너가 폼으로 제작한 소파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폼, 퀼팅, 열성형 플라스틱의 등장과 더불어 새로운 좌석 개념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지던 흐름 속에서 장 로제와 미셸 뒤카루아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새로운 생산 기법을 개발해나갔다. 그리고 이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며 새로운 모델을 구상한 결과, 토고가 탄생했다. 폼을 활용한 각종 산업재를 만드는 벨기에 제조사 레티셀 Reticel과 협력했고, 이들은 세 가지 유형의 폴리우레탄 폼을 조합하는 구조를 고안해 올폼 all-foam 소파의 내구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받침대 없이 폼을 천이나 가죽으로 감싸는 방식은 모듈형 구성의 확장성을 가능하게 했고, 가벼운 무게로 이동성을 높였으며, 무엇보다 편안한 착석감을 제공했다. 토고는 신소재의 등장이 어떻게 소파 디자인 전반에 빠른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였다.
1950년대까지 주류를 이루던 강철 프레임 기반의 바우하우스 가구, 혹은 알바 알토, 한스 웨그너, 핀 율 등 캐비닛메이커와 공예가들의 격식 있고 보수적인 디자인이 지배하던 흐름 속에서 토고는 기존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례로 읽혔다. 이러한 맥락에서 리네로제는 토고의 광고 포스터에 “조상님 초상화와 리네로제 소파가 함께라고? 안 될 게 뭐야?(la galerie des ancêtres et un siège Roset? Pourquoi pas)”라는 문구를 내걸며, 전통적 인테리어와 거리가 먼 새로운 유형의 소파를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1970년대, 스타일의 부상
토고의 독특한 디자인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지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배경에는 1960년대 후반부터 형성된 사회·문화적 변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1968년을 기점으로 프랑스는 대규모 학생 시위와 총파업을 겪으며 사회 전반에 걸친 격변을 경험했다. 이른바 ‘68혁명’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권위적 사회구조와 기존 질서에 대한 젊은 세대와 노동자의 불만이 분출된 계기였으며, 이후 교육개혁과 성 해방,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인식 변화로 이어졌다. ‘포석 아래에서 해변을 발견하라(trouver la plage sous les pavés)’라는 68혁명의 구호가 상징하듯, 기존 질서에 대한 문제의식은 예술과 디자인 전반에서 새로운 형식과 표현을 낳았다.
토고는 이러한 시대정신 속에서 등장한 결과물로, 비정형적 형태와 신소재의 사용, 그리고 이에 대한 대중의 호응까지 포함해 1968년 이후 변화한 감각과 1970년대의 창조적 에너지를 응축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프랑스 외 지역에서도 감지되었다. 1960년대 영국에서는 파카를 입고 스쿠터를 타는 젊은 세대로 대표되는 모즈 Mods 문화가 등장했고, 이탈리아에서는 조 콜롬보, 마리오 벨리니, 아킬레 카스틸리오니, 가에타노 페셰 Gaetano Pesce등이 폼의 볼륨과 유연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실험적 제품을 통해 새로운 디자인 담론을 형성했다.
1970년대는 토고에 이상적인 시대였다. 복슬복슬한 러그와 라바 램프, 스스로 형태를 유지하지 않는 가구들이 실내를 채웠고, 패션과 대중문화 역시 사이키델릭 아트, 앤디 워홀의 페인팅, 디스코 문화와 극단적 실루엣이 공존하며 표현의 범위를 확장해나갔다. 기존의 안정적 기준은 다양한 실험으로 대체되었고, 사람들은 자유로운 자세로 혹은 쿠션 속에 파묻힌 채 생활하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957년 에로 사리넨이 제안한 거실 바닥의 움푹 들어간 내장형 좌석 ‘대화용 구덩이(conversation pit)’의 개념은 1970년대에 이르러 주거 환경에서 흔하게 드러났다. 이는 1980년대 초 외부 세계로부터 벗어나 개인의 안전한 공간에서 안정을 추구하는 태도를 뜻하는 ‘코쿠닝 cocooning’이라는 개념으로까지 이어졌다. 다양한 모듈로 구성된 토고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1970년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디자인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고, 특히 음악가와 예술가 사이에서 사랑받았다. 이들은 토고를 기존 삶의 방식과는 다른 태도를 상징하는 가구로 받아들였으며, 몸을 웅크린 채 오래 머물 수 있는 부드러운 공간으로 인식했다.
이처럼 1970년대 인테리어는 보다 예측 불가능하고 개인화된 성향을 띠게 되었고, 미드센추리 모더니즘 이후의 새로운 어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가죽부터 벨벳, 다채로운 색상의 패브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커버로 연출 가능한 토고는 창의적 자유에 대한 욕구가 새로운 도구와 다재다능한 소재의 활용으로 확장되던 시대적 흐름에 부합했다. 이러한 1970년대 반문화의 자유로운 정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디자인과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이콘의 화려한 복귀
1973년 등장 당시부터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으로 주목받은 토고는 디자인사적으로 의미 있는 의자로 평가받아왔다. 5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토고는 여전히 생산되며, 리네로제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동시에 토고는 2020년대에 들어 다시 한번 주목받은 ‘화려한 복귀’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2019년부터 이어진 글로벌 팬데믹을 계기로 많은 사람이 가구와 인테리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토고는 인플루언서와 유명인들의 공간을 통해 소셜 미디어에서 빠르게 확산되며 다시금 트렌드의 중심에 섰다.
하나의 가구가 이처럼 폭넓은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는 드문데, 이는 마치 패션과 디자인 전반에서 반복되어온 아이콘의 순환을 떠올리게 한다. 1920년대에 등장한 여성 슈트가 1960년대 입생로랑의 컬렉션으로 재조명되거나, 2000년대 초반의 스타일이 Y2K라는 이름으로 2020년대에 다시 부상한 사례처럼 말이다. 토고를 둘러싼 관심은 모조품의 확산이라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지만, 이러한 반복과 변주는 디자인사 전반에서 지속되어온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소셜 미디어를 기반으로 이미지가 빠르게 확산되고 접근성이 높아진 현재의 상황은 토고가 처음 출시되던 당시의 맥락과도 맞닿아 있다.
리네로제는 토고 출시와 동시에 당대 최고의 광고 기획자 자크 세겔라 Jacques Séguéla와 함께 이를 위한 새로운 프로모션 전략을 적극적으로 펼치며 소비자에게 토고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고자 했다. 이러한 흐름은 2000년대 초에도 이어져 프랑스 광고 에이전시 칼레가리 베르빌 그레이 Callegari Berville Grey의 피에르 베르빌 Pierre Berville과 더불어 토고를 위한 특별한 광고 캠페인을 선보였다. 유명 사진가의 작업 위에 도발적 문구를 결합한 이 캠페인은 큰 호평을 받으며 2004년 APPM(Association pour la Promotion de la Presse Magazine) 그랑프리를 수상했고, 토고에 대한 인식을 대중에게 심어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토고의 초기 성공 역시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전략과 무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토고의 지속적인 매력은 단순한 노출 효과에만 기인하지 않는다. 토고에 담긴 상상력과 에너지, 그리고 특유의 유머는 세대를 넘어 공감을 이끌어내왔고, 다양한 색상과 소재는 특정 취향에 국한되지 않는 폭넓은 선택지를 제공해왔다. 모듈형 구조와 오랜 시간 검증된 내구성 또한 토고의 성공을 뒷받침한 요소다. 어린이용 버전이나 일부 모델에 팔걸이를 추가하는 등 지속적인 변주는 사용 환경에 따른 유연성을 더했다. 토고는 트렌디한 공간은 물론, 고풍스러운 저택이나 현대적인 로프트에서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미니멀리즘부터 인더스트리얼, 보헤미안 스타일까지 폭넓게 수용한다. 레니 크래비츠, 밥 싱클레어, 맷 소럼, 플로랑스 포레스티, 마크 레빌레 등 다양한 인물의 공간에 등장해온 이 소파는 두 세대에 걸쳐 사람들이 몸을 맡겨온 부드럽고 주름진 실루엣으로 오늘날까지도 변함없는 매력을 뽐내고 있다.
Togo Composition
토고 컬렉션은 총 8개의 모델로 이루어져 있다. 좌석 크기와 깊이, 팔걸이 유무에 따라 일자형·코너형 소파 등이 있으며, 각 모델은 단독으로 사용하거나 다른 토고 소파나 풋스툴과 조합해 사용할 수 있다. 리네로제는 각각의 모델을 적절하게 구성한 10가지 콤포지션 세트 옵션 또한 제공한다. 가벼운 무게로 이동과 조합이 자유로우며, 바닥에는 미끄럼 방지 천이 덧대어 있어 제자리에 안정적으로 고정된다.
퀼팅
특유의 주름진 퀼팅 표면을 만들어 내기 위해 넉넉한 양의 소재를 사용한다. 모든 재단과 봉제 바느질은 프랑스 내 공장에서 여전히 수작업으로 진행하는데, 완벽하게 균일하고 풍성한 주름 형태를 완성하기 위해 장인들은 상당한 수준의 기술과 많은 시간을 들여 작업한다. 이는 토고의 가품과 가장 극명한 차이를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버튼
작고 납작한 버튼을 정확한 위치에 박기 위해 길다란 바늘로 퀼팅을 관통해 단추를 꿰맨다. 버튼은 주름 형태와 퀼팅을 폼에 효과적으로 고정하는 역할을 한다.
폼
밀도가 다른 세 종류의 폴리우레탄 폼을 레이어링한 구조 덕분에 몸의 형태에 맞춰지며, 등받이와 좌석의 지지력이 강화된다. 바닥에 닿는 부분은 고밀도의 폼이 안정적 지지력을 제공하고, 중간층은 중간 밀도로 완충 역할을 하며, 윗부분에는 가장 부드러운 폼 소재를 사용한다. 이러한 구조는 편안한 착석감을 완성하며 소파의 수명을 늘리는 요소로, 프레임이 없고 전체가 폼으로 이루어진 토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업홀스터리
가죽, 캔버스, 벨벳, 프린트 패브릭 등 다양한 업홀스터리 옵션을 제공한다. 리네로제에서 사용하는 60개 안팎의 원단 외에도 별도 원단으로 자유롭게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해 소재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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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GO
1973년 미셸 뒤카로이가 디자인한 토고는 전통적 소파의 규범을 벗어난 형태입니다. 특유의 주름진 표면과 바닥에 직접 닿는 낮은 좌면, 올폼 구조의 내부는 당대 소파의 디자인 관습과는 차원이 다른 편안함과 혁신성을 제시합니다. 1960‐1970년대 사회·문화적 변화를 갈망하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탄생하며 ‘시대 정신’을 반영했던 토고의 매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팬데믹 시기 소셜미디어를 통해 재조명되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토고는 단순한 가구를 넘어 자유로운 정신과 창의적 에너지를 상징하는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