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릭 세귄
에디터 유다미(파리), 포토그래퍼 박성훈(파리)
패트릭 세귄은 어느 누구보다도 장 프루베 디자인의 가치와 역사적 의미를 깊이 연구하고 널리 알린 인물로 갤러리 패트릭 세귄Galerie Patrick Seguin의 오너이자 설립자다. 장 프루베에 대한 그의 열정은 1980년대 말, 파리 생투앙 벼룩시장에서 장 프루베의 콤파스 테이블과 메트로폴 305번 의자를 발견하며 시작됐다. 이후 그는 장 프루베의 작품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디자인 유산을 수집하고 섭렵했다. 또한 이렇게 엄선한 디자인 작품들을 유수의 글로벌 아트 마켓에서 선보이며 컬렉터블 디자인 신의 가장 높은 곳에 장 프루베의 위상과 권위를 올리는 데 일조했다.
어느덧 35년 째 패트릭 세귄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네요. 프랑스 모더니즘 디자인을 대표하는 갤러리로 성장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합니다.
초반에는 1950년대 디자인을 전반적으로 다루다, 이내 장 프루베 Jean Prouvé, 샬롯 페리앙 Charlotte Perriand, 르 코르뷔지에 Le Corbusier, 피에르 잔느레 Pierre Jeanneret, 장 로이어 Jean Royère 등 20세기 중반 프랑스를 중심으로 함께 활동했던 다섯 명의 건축/디자이너의 작품만 수집하는데 몰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산업화를 겪고 대량생산 시대로 향하는 길목에서 의미있는 아이디어를 내보인 혁신가이자 사상가입니다. 이렇게 갤러리의 방향성을 다섯 명의 창작자로 집중한 이후 다양한 콘셉트의 전시와 출판 프로젝트를 통해 더욱 전문화된 기관으로 입지를 다졌는데요, 특히 2000년대 부터는 디자인 마이애미, 아트 바젤 같은 글로벌 미술 시장에 꾸준히 참가해 프랑스 전후 디자인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홍보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또한 이 갤러리 공간을 설계한 프랑스 현대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과 함께 장 프루베의 건축에 관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다섯 명의 디자이너 중에서도 장 프루베 디자인에 대한 애정이 유독 남다르다고 느꼈어요. 그의 디자인에 매료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저는 1980년대 초부터 현대미술을 수집하면서 다양한 예술가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예술쪽 인사라면 많은 이들이 이미 장 프루베의 감각과 철학에 공감하고 그 가치를 공유하던 상황이었어요. 제가 처음 장 프루베 작품을 발견하고 구매한 건, 1980년대 말, 파리 생투앙 벼룩시장에서였습니다. 학교 기숙사를 위한 콤파스 책상과 카페테리아를 위한 메트로폴 305번 의자였는데, 1950년대에 만들어진 심플한 디자인임에도 불구하고 고유의 아름다움에 반했죠.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어요. 그로부터 얼마 후 파리 바스티유 지역에 공간을 마련해 갤러리를 운영하기 시작했고, 장 프루베에 관한 것이라면 지금까지도 가장 주된 관심사로 두고 있습니다.
갤러리를 오픈하던 1990년대, 당시 컬렉터블 디자인신의 분위기는 어땠는지 이야기해주세요.
1980년대 후반부터 유럽과 미국에서는 20세기 모더니즘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형성되었습니다. 따라서 안목있는 수집가들도 상징적인 산업 디자인 제품이라면 관심을 보였고, 컬렉터블 디자인 시장도 급성장하는 배경이 됐죠. 예컨대 뉴욕 노이에 갤러리 Neue Galerie의 공동 설립자인 로널드 로더 Ronald Lauder나 일레나 소나벤드 Ileana Sonnabend, 래리 가고시안 Larry Gagosian, 피터 브란트 Peter Brant 같이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아트 컬렉터들이 초창기부터 우리의 컬렉션을 소장했습니다. 또한 엄숙한 박물관이나 활기찬 국제 디자인 박람회에서 만난 일반 관객들 역시 독창적이고 예술적인 장 프루베의 디자인에 감탄했어요. 전시의 형식이나 국적의 경계를 초월한 반응을 지켜보며 장 프루베에 대한 경외심이 들 수밖에 없었죠. 비로소 그의 철학과 선구적인 디자인이 문화적 유산으로서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는 것 같아 흡족했습니다.
"스탠다드 체어는 산업적 미학과 인체공학 원칙을 탁월하게 원칙을 탁월하게 반영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디자인에서 편안함을 이끌어내고, 우아한 형태임에도 내구성을 놓치지 않았으며, 재료를 효율적으로 다루러 한 그의 노력과 진심이 타임리스 디자인의 모범 사례를 탄생시킨거죠"
패트릭 세귄 갤러리는 201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현대미술 갤러리와 협업해 다양한 조합으로 장 프루베 컬렉션을 선보였는데요, 이런 협업은 어떤 배경으로 이루어졌나요?
어느날 현대미술과 장 프루베의 작품이 서로 모종의 시너지 효과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컨대 장 프루베와 미국의 조각가 알렉산더 칼더 Alexander Calder는 생전에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프로젝트도 함께 했던 관계였어요. 2013년에 뉴욕의 가고시안 갤러리와 협업해 칼더의 모빌 조각과 프루베의 작품으로 전시를 구성한 것도 그 이유에서였죠. 2015년에는 산업 폐기물로 크고 작은 조각품을 만들었던 미국 아티스트 존 체임벌린 John Chamberlain의 작품과 장 프루베의 조립식 주택을 한 자리에서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각기 다른 분야지만 금속 소재의 잠재력을 활용한 혁신가라는 공통점에서 기획한 전시죠. 장 프루베가 선구적인 산업 기술과 미니멀리즘 미학을 추구한 것과 별개로, 어릴 때부터 예술적 환경에서 자랐고 동료 예술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사실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당신은 장 프루베의 작품이 어떤 면에서 선구적인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나요?
장 프루베의 작업에는 기술적 진보와 고유의 미적 감각이 조화롭게 담겨있습니다. 주변 창작자들로 부터 받은 영향이 작품에 반영된 것도 인상적입니다. 예컨대 그는 유명한 화가 빅토르 프루베의 아들이었고, 20세기 초 에콜 드 낭시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저명한 유리 공예가 에밀 갈레Émile Gallé와도 긴밀한 관계였어요. 참고로 한가지 일화를 말씀드릴게요. 빅토르 프루베가 어느날 그의 아들 장 프루베에게 “내부가 채워진 줄기보다 속이 빈 줄기가 더 강한 저항력을 가졌다”며 꽃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었어요. 흥미로운 점은 장 프루베 디자인의 구조적 논리도 여기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 역시 가구나 건축의 기둥을 만들 때, 철판을 구부린 관 형태의 구조를 이용해 그의 중요한 원칙이었던 가볍고, 견고하며 합리적인 디자인을 구현했습니다. 스탠다드 체어의 다리와 조립식 주택에 등장하는 콤파스 모양의 축형 포털 프레임 역시 내부가 비어있는 관 형태로 강한 내구성을 보장합니다.
장 프루베의 디자인 유산 중에서도 특히 스탠다드 체어가 디자인 애호가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각광받고 있습니다.
형태와 기능의 완벽한 조화 때문이 아닐까요. 특히 스탠다드 체어는 산업적 미학과 인체공학 원칙을 탁월하게 반영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디자인에서 편안함을 이끌어내고, 우아한 형태임에도 내구성을 놓치지 않았으며, 재료를 효율적으로 다루려 한 그의 노력과 진심이 타임리스 디자인의 모범 사례를 탄생시킨거죠.
패트릭 세귄 갤러리는 과거의 디자인을 중요한 문화적 자산으로 인식시키고 지켜내야할 유산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다. 특히 장 프루베 디자인의 방대한 자료를 한 데 엮은 출판 프로젝트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20년 전, 장 프루베의 가구와 건축에 관한 800쪽 분량의 책을 출판했고, 5년 전에 한번 더 개정판을 발행했습니다. 이 책에서는 장 프루베의 작품을 수집한 전 세계 컬렉터들의 프라이빗 공간을 60쪽에 걸쳐 소개하는 내용이 특히 흥미로운데요. 장 프루베의 작품에 예술, 건축, 디자인 등 각 영역과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모습도 볼 수 있죠. 사실 제 공간도 수록했답니다(웃음). 이 외에도 조립식 건축에 초점을 맞춘 3개의 시리즈도 4년에 걸쳐 발행했습니다. 각 시리즈는 한 권에 하나의 건축물을 심도 깊게 다루며 과거와 현대 사진 자료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5권의 단행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역시 장 프루베 매니아 답게 집에도 그의 작품을 두고 사용하는군요.
물론이죠. 개인적으로도 모더니즘 디자인 가구를 포함해 여러 현대 아트웍들을 소장하고 있는데요, 스탠다드 체어는 다이닝 테이블과 세트로 놓았습니다. 장 프루베 디자인은 제 소장품들과 완벽하게 어울려요.
30년 넘도록 장 프루베에 대한 열정을 끊임없이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그의 훌륭한 디자인 가치가 저에게 꾸준히 동기를 부여합니다. 장 프루베의 디자인은 단순한 사물을 넘어서 틀을 벗어난 사고,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 인간 중심의 디자인을 모두 구현한 작품이에요.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장 프루베의 탁월함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그의 선구자적 정신과 혁신적인 기술은 전 세계 수집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으며, 많은 디자인 애호가들의 여정에 초석이 될 정도로 의미있는 문화 유산입니다. 그러니 저 역시 컬렉터로서 그의 공헌을 알리고 보전하는 데 열정을 쏟을 수 밖에요.
긴 수집 여정 중 기억에 남는 특별한 일화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제 컬렉션은 마치 촘촘히 짜여진 태피스트리같은 모습으로 장 프루베에게 매료된 긴 시간을 증명합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장 프루베가 아프리카 난민을 위해 제작한 조립식 주택과 가구들을 발견했던 날이에요. 프랑스와는 다른 아프리카 기후를 고려하고, 이동에 용이하도록 고민한 솔루션이죠. 또한 1994년 시테 대학교에서 막 구입한 454개의 의자와 87개의 테이블을 갤러리 안에 옮긴 날도 참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동안 어디에서도 공개하지 않은 사진이 있는데, 매거진 C를 위해 특별히 선물할게요.
그동안 무수히 많은 장 프루베의 작품을 접했으리라 생각해요, 그중에서 소장가치를 판단하는 당신의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출처가 확실하고 녹슬지 않은 작품을 최우선 순위에 둡니다. 또 다양한 유형의 피스를 수집하려고 노력합니다. 의자, 스툴, 안락의자 등 좌석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다양한 피스가 있다면 창작자의 작업 범위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거든요.
모더니즘 디자인에 집중하는 이유로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에 대한 존중'이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주목하고 있는 디자이너나 브랜드가 있나요? 가구, 그래픽, 패션, 건축 등 전 분야를 통틀어서요.
패션 브랜드를 꼽아볼게요. 저는 새로운 기술적 가능성에 대한 라프 시몬스Raf Simons의 비전을 높이 평가합니다. 생 로랑의 안토니 바카렐로Anthony Vaccarello의 크리에이티브와 더 로우The Row의 모던함도 특히 매력적으로 느끼고요. 이 브랜드들은 차원 높은 디자인과 큐레이터적 접근 방식, 정교한 디테일에 주의를 기울이며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슈가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저는 언제나 장 프루베의 건축 컬렉션을 확장하는 데 집중하고 현대 미술신을 관심있게 보려고 노력합니다. 또한 컬렉터로서 디자인의 문화적 유산을 알리고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풍요롭게 경험할 수 있도록 꾸준히 열린 자세로 임해야겠죠. 이점에서 최근 패트릭 세귄 갤러리에서 개최한 가상현실과 역사적 아카이브를 결합한 몰입형 전시 <장 프루베, 메종 레 주르 메이에르Jean Prouvé, Maison Les Jours Meilleurs, 1956>가 큰 화두였습니다. 갤러리 현장에는 장 프루베 하우스의 가장 핵심적인 코어 부분을 설치하고 마치 센느강변에 지어진 산업용 주택에 방문한 것 같은 경험을 VR로 제공한 전시입니다. 이외에는 뉴욕, 마이애미, 바젤, 파리 등 세계 전역에서 열리는 아트 페어에 참가하는 것도 중요한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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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NDARD CHAIR
스탠더드 체어는 1934년 프랑스의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인 장 프루베가 제작한 4번 의자를 원형으로 합니다. 장 프루베는 오랜 기간 4번 의자의 소재, 디자인을 변형하며 1950년대 대량생산에 용이한 ‘표준’ 의자를 완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