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11구에 모인 프랑스 모던 디자이너들의 유산
에디터 유다미(파리), 포토그래퍼 박성훈(파리)
활기찬 에너지로 가득한 파리 11구에 사는 티에리 라모얀는 40여 년 전, 물도 전기도 없었던 텅 빈 공간에 벽을 세우고 방을 만들어 지금의 보금자리를 완성했다. 그리고 그곳에 자신을 매료시킨 장 프루베, 피에르 잔느레 Pierre Jeanneret, 르 코르뷔지에 Le Corbusie, 샤를로트 페리앙 Charlotte Perriand 등이 디자인한 가구를 채워 넣으며 수집 생활을 시작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주변 사람들의 요청으로 빈티지 가구를 하나 둘 구해다주던 정성은 ‘갤러리를 원’을 열게 된 계기. 프랑스 모던 디자이너들의 유산이 가득한 그의 집은 이제 갤러리이자 사무실, 쇼룸으로 자리한다. 매일같이 가족과 직원, 고객과 손님들이 드나들며 공과 사가 한 데 어우러지는 생활의 장단점을 묻자 티에리가 명쾌하게 대답했다. “장점만이 있고 단점은 하나도 없다”고.
이 인터뷰는 1호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40년 넘도록 한 집에서 산다는 것은 꽤나 놀라운 일인데요. 그동안 파리 11구의 변화를 몸소 경험했을 것 같아요.
당시 파리 11구는 일종의 ‘게토’였어요. 지금은 매력적인 비스트로나 구경 할 만한 가게가 즐비하지만 당시에는 외식 한 번 하는 날이면 센 강을 건너가야 할 정도로 쓸쓸한 동네였거든요. 이 집 역시 난방은 커녕 전기도 물도 나오지 않는 건물이었습니다. 그저 비둘기나 날아다니는 텅 빈 공간이랄까요. 지금처럼 살기 좋은 공간으로 만들기까지 참 오랜 시간과 여러 과정을 거쳐야 했어요. 다행히 우리의 공간을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데 중요한 조언을 해줄 친구가 있었습니다. 파리 피카소 미술관, 니스 마티스 미술관, 파리 현대 미술관 등을 지은 건축가 장-프랑수아 보딘 Jean-François Bodin의 도움으로 먼저 침실과 욕실을 만들기 위해 벽을 세웠어요. 다음에는 저의 두 아들 루카 Lucca와 시몬 Simon을 위한 방 두 개를 만들었고요. 그리고 각 방에 좋은 가구를 채워 넣으며 매력적이면서도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에 알맞는 공간으로 만들어갔습니다.
그래서인가요? 집 안 곳곳이 창작자의 아뜰리에 같기도, 갤러리나 수장고 같기도 합니다. 스탠다드 체어를 비롯해 빈티지 모던 가구들이 자연스럽게 놓인 모습이 근사해요.
우리는 갤러리나 박물관 소장품에 견주는 디자인 작품을 일상 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게 배치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가구란 미술품과 달리 적극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디자이너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이해하고 물건의 실용성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보거든요.
언제부터 가구를 수집하기 시작했나요?
1980년 쯤이요. 장 프루베의 스탠다드 체어도 그때부터 구매했어요. 주말에 파리 벼룩시장에 나가보면 장 프루베의 작품들을 종종 맞딱드릴 수 있는, 약 50유로에 스탠다드 체어를 구매할 수 있었던 시절이죠.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디자인 갤러리로 잘 알려진 패트릭 세귄 Partick Seguin 갤러리도 아마 설립 초창기였을 거예요. 저는 매 주 파리의 갤러리와 골동품 시장들을 돌아다니며 1950년대 물건들을 탐닉하는 데 몰두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상인들과 만나 교류하면서 가구에 대한 관심과 견문을 넓혔고 그로부터 지금까지 가구 중에서는 1950년대 전후 디자인만 수집하고 있습니다.
전후 디자인에 몰두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당시 아르 데코 가구들은 이미 너무나 높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어서, 제가 도저히 탐내기에 어려운 가격대였어요. 1980년대 디자인은 제 취향이 아니었고요. 반면 1950~1960년대 전후 디자인이 제게 참 현대적인 인상으로 다가왔어요. 스탠다드 체어의 원형은 1930년대에 만들어졌지만 2024년인 지금까지도 여전히 세련되고 동시대적인 미감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 컬렉팅에 있어서 1950년대 전후 디자인을 당신의 ‘스탠다드’라고 봐도 될까요?
저는 가구를 구매할 때, 소장과 사용 두 가지를 중요한 기준으로 둡니다. 제가 1950년대 디자인을 추종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전후 디자인은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오래 전 패트릭 세귄 갤러리에서 노란색으로 맞춰 배치한 SCAL침대, 옷장, 의자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매료되어 세트로 구매한 적이 있었는데요. 제 두 아들은 태어날 때 부터 그 장 프루베 침대를 사용하며 자랐어요. 최근에는 두 개의 침대 중 하나를 친구에게 팔았고, 나머지 하나는 여전히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동안 아무 문제 없이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견고하고 튼튼하다는 거죠. 두 기준에 완전히 부합한 사례죠?
사랑하는 가족들과 보낸 시간과 더불어, 애장품으로 가득한 집인 만큼 당신에게 각별한 공간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루카와 시몬이 어렸을 때, 저는 아이들이 이 공간에서 노는 모습을 보는 것을 참 좋아했어요. 어린이용 세 발 자전거를 타고 가구들 사이를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스탠다드 체어 2개를 양 편에 두고 골대 삼아 축구를 하고, 때로는 커다란 샤를로트 페리앙 Charlotte Perriand의 테이블 위에 네트를 설치해서 탁구를 치기도 했죠. 물론 아이들이 거침 없이 다뤄도 절대 망가지거나 부서지지 않는 튼튼한 가구들이기에 가능했다고 봐요. 이렇게 루카와 시몬은 우리 가구들을 이용해 자기들끼리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데 매우 창의적이고 열정적이었어요. 다만 이제 두 소년은 자신들이 훌륭하고 희귀한 가구를 갖춘 멋진 곳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만큼 자랐고, 비로소 독립도 했죠.
특별한 가구에 둘러 쌓여 자란 만큼 루카와 시몬은 당신의 취향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 같아요. 반대로 당신과 아내는 두 아들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나요?
디자인 가구 뿐 아니라 매 주 아이들을 데리고 파리에 있는 갤러리를 한바퀴 돌았던 것이 아이들의 성향에 영향을 주었을 거라고 봐요. 예컨데 영화 감독인 시몬은 가구 디자이너라는 또다른 비전을 가지고 있고, 루카는 패션 디자이너로 창작자의 면모가 강해요. 그래서인지 아주 다양한 분야에서 영감을 얻고 많은 영역에 열정을 갖고 있습니다. 현대 미술, 음악, 영화, 특히 빵 매니아에요. 매일 바게트 하나를 다 먹을 정도로…(웃음) 아무튼 루카가 제게 주는 영향은 이렇게 세상의 많은 것들을 늘 흥미롭게 바라보고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모습입니다. 그런 루카를 보면 저도 열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배움을 얻어요.
오늘 이렇게 같은 스웨터를 입고 온 걸 보니 정말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어요.
완전한 우연이었습니다(웃음). 그러나 사실 종종 있는 일이에요.
아이들이 뛰놀던 집이 이제는 함께 일하는 장소가 된 것도 흥미롭습니다.
루카는 패션 브랜드 ‘베흘렁 Verlan’을 운영하면서 저와 함께 프랑스 전후 디자인 가구를 다루는 ‘갤러리 원 Galerie One’ 업무를 맡고 있어요. 저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제 본업은 일본 장인들의 공예품과 브랜드를 프랑스에 선보이는 일입니다. 따라서 1년 중 6개월은 일본에서 머물러요. 이때 루카가 파리에서 갤러리 업무를 도맡아 하죠. 루카와 업무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제 인생의 큰 기쁨 중 하나입니다. 함께 일하면서 각자 관심있는 작품에 대해 틈틈히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아요. 또 우리는 어떤 물건을 새로 들이고 내보낼 때마다 함께 의논하고 가구를 다시 배치하는 일을 매우 즐긴답니다.
언제부터 집을 갤러리이자 쇼룸, 사무실로 이용했나요?
1988년부터 입니다. 28년간 광고 업계에서의 경력을 뒤로하고 포터 같은 일본 브랜드를 프랑스에 유통하는 제 사업을 시작한 시기였어요. 쇼룸과 사무실을 겸할 용도로 여러 공간을 찾아다녔지만 제가 원했던 조건을 충족하는 곳을 얻기 어려웠는데, 여기처럼 채광이 좋고, 차분한 분위기에, 층고가 높은 곳이 없더라고요. 결국 제가 생활 습관을 바꾸고 집을 쇼룸과 사무실처럼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때부터 제 팀원들은 저희 집으로 출근을 하고 있어요. 갤러리 고객들 역시 저희 집으로 초대합니다. 루카의 브랜드 맴버들도 여기서 함께 일하고요.
피에르 잔느레 Pierre Jeanneret의 다이닝 테이블과 찬디가르 프로젝트 의자, 장 프루베와 샤를로트 페리앙의 의자들을 매치한 공간이 인상적입니다.
업무를 보는 공간이에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 프루베의 메트로폴 306은 40년 전부터 메일 사용해온 ‘제 의자' 입니다. 40여 년 전, 파리의 컬렉터 디디에 티소Didier Teisso로부터 구매했어요. 그는 여전히 열정적으로 전후 디자인을 다루고 특히 르 코르뷔지에를 심도 깊게 연구하는 분 입니다. 당시 저는 마래에 위치한 그의 작은 갤러리에서 인조가죽을 사용한 이 푸른색 스탠다드 체어를 처음 발견했고, 즉시 사랑에 빠져서 3분 만에 구입하기로 결정했어요. 순식간에 돈을 지불하고 의자를 자동차 트렁크에 넣어 집으로 돌아오던 그 날이 생생하게 기억나요.
1950년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들의 작품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곳 분위기는 마치 그 당시 디자이너들이 모여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장 프루베, 피에르 잔느레, 샤를로트 페리앙, 르 코르뷔지에 Le Corbusier의 디자인 조합은 가구를 옮겨 공간의 레이아웃을 바꾸는 것을 즐기는 우리에게 매우 탁월해요. 당시에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인물들이여서인지, 각기 다른 디자이너가 만들고 다른 장소에서 쓰이다 모인 가구들인데도 언제나 잘 어울립니다. 한 데 섞여 있는 모습이 어수선하다거나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아요. 피에르 잔느레의 푸른색 의자는 루카의 최애입니다. 인도 찬디가르의 어느 행정 사무실에 있던 의자인데, 당시 사용하던 사람이 단지 푸른색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페인트를 칠했대요. 빈티지 세계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물건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죠.
오늘날 이 다섯 명의 디자이너들의 위상과 그 가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 명단을 차지하고 있죠. 가격이 로켓처럼 오르고 있잖아요! 사실 1980~1990년대까지만 해도 장 프루베 디자인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아주 소수의 디자인 애호가들만이 알고 있었고, 정확한 정보를 찾는데도 어려움이 있었죠. 당시 프루베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은 패트릭 세귄 갤러리, 필립 주스 Philippe Jousse 갤러리처럼 1950년대 디자인에 특화된 공간이나, 기타 극소수의 갤러리 뿐이었습니다. 장 프루베 디자인이 조금씩 알려지게 된 건, 갤러리 오피니언 리더들이 장 프루베에 전시 카탈로그를 출판하기 시작하고 뉴욕 현대 미술관, 아트 바젤, 파리에서 열리는 FIAC(현대미술 국제박람회)같은 곳과 협업하거나 전시에 참여하면서로 기억해요. 현대 미술 컬렉터들의 눈길을 끄는데 성공했고, 이내 크리스티Christie's나 소더비Sotheby's 같은 대형 옥션이 합세해 디자인 시장은 전 국제화됐죠. 특히 스탠다드 체어는 매우 영향력 있는 수집가들이 눈독을 들이는 영역이 됐습니다.
프랑스 일반 대중들에게는 어떤가요? 장 프루베라면 프랑스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손꼽히지 않나요?
사실 아직까지는 디자인이나 수집에 관심있는 사람들에 한해 높은 인기를 끌고 있습입니다. 제게 흥미로운 것은 전 세계 패션 디자이너들 사이에서의 반응이에요. 우선 요지 야마모토는 장 프루베의 매우 희귀한 트라페즈 Trapèze 테이블을 파리와 도쿄의 매장에 배치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패션 디자이너 아제딘 알리아 Azzedine Alaia는 자신에 집에 장 프루베의 주유소를 설치하고는 그 안에 침실을 마련했고, 마크 제이콥스 역시 열혈 수집가였습니다. 아무래도 장 프루베는 창의적인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힘을 가진 것 같아요. 우리의 친구나 컬렉터 중 상당수도 음악가, 패션 디자이너, 영화 감독, 미술 감독, 광고 제작자 등 크리에이티브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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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NDARD CHAIR
스탠더드 체어는 1934년 프랑스의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인 장 프루베가 제작한 4번 의자를 원형으로 합니다. 장 프루베는 오랜 기간 4번 의자의 소재, 디자인을 변형하며 1950년대 대량생산에 용이한 ‘표준’ 의자를 완성했습니다.